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작 뉴턴 (문단 편집) === 조폐국 감사, 국장으로서의 뉴턴 === 1696년 조폐국 감사 자리를 시작으로[* 이 직위는 정부에서 발행한 통화를 감독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위조화폐]]를 통해 경제를 혼란케 하는 위조범들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형사]]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감사 직위를 얻은 까닭에 뉴턴의 경력에 [[탐정]]이 추가되었고, 당대 최강의 화폐 위조범이었던 윌리엄 찰로너(William Chaloner, 1650~1699.3.22.)라는 사람은 이 당시 뉴턴과 치열한 추격전과 법정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였던지라 결과는 뉴턴의 압승으로 끝났으며 찰로너는 감옥에 갇힌 뒤 1699년 3월 22일에 교수형을 당했다. [[http://google.com/amp/s/m.sedaily.com/NewsViewAmp/1ODHDF5HHH|여기]]에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1699년부터 조폐국장의 자리를 25년이나 맡았는데, 임기 중에 금속 비율 등을 바꾸어 화폐를 개혁하기도 했다. 특히 [[동전]]의 테두리를 깎아 팔아먹거나 동전을 하나 더 만드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이른바 클리핑(clipping)이라고 한다. 여기서 클립은 종이 클립이 아니라 손톱깎이(nail clipper)의 그 클립이다. 동전의 테두리를 조금씩 깎아 이득을 취하는 방법으로, 실제 옛날에는 동전을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으로 만들었고, 이런 금속들은 상대적으로 무른 종류였기에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이 외에도 동전을 자루에 넣고 흔들어 떨어져 나오는 금속 부스러기들만 긁어모으는 스웨팅(sweating. 땀을 흘린다는 뜻이 있다.) 등의 수법이 성행했다. 관련 내용은 [[늑대와 향신료/실제 중세시대와의 비교#화폐|이곳]]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동전에 테두리와 톱니를 만들어 넣은 것은 이 사람의 업적. 또한 조폐국장이 되고 2년 뒤인 1701년에 [[아마인유]]를 이용한 아날로그 온도계를 개발하여 [[뉴턴온도|역사상 최초의 온도 체계]]를 고안하기도 했으나, 순금속([[주석(원소)|주석]], [[납]], [[비스무트]] 등)과 간단한 합금의 녹는점을 측정한 값이 포함되어있는 등 조폐국의 업무와 관련이 있을 법한 내용의 특성상 본인의 안위를 걱정해서인지[* 한편으론 뉴턴의 온도계는 고온에서 오차가 커지는 문제가 있어 금속의 녹는점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데 쓰기엔 부적합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익명으로 연구를 발표[* 영국 [[왕립학회]]의 학술지 '왕립학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에 발표했을 때 본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훗날 뉴턴 사후 그의 업적을 모아 편찬한 서적이 발간되면서 해당 논문이 그의 것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하여 이 온도 체계는 생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뉴턴이 조폐국장을 맡은 일화 또한 흥미롭다. 원래 뉴턴과 친분이 있던 재무대신 찰스 몬태규가 월급 많이 주는 대신 할 일 별로 없는 명목상의 자리로 조폐국 감사 자리를 하나 줬는데, 그가 조폐국 감사 자리에 엄청난 열의를 보이게 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예 거처를 [[케임브리지(영국)|케임브리지]]에서 [[런던]]으로 옮기고는 자는 시간 빼고 하루 종일 조폐국 업무에 몰두했다고 한다. 당시 유명했던 화폐 위조범 윌리엄 챌로너를 잡기 위해 정보원을 고용하고, 이러한 정보원과 만나기 위해 변장을 하고 술집에서 접선을 하기도 했다고. 또한 조폐국장이 되고 싶어 이런저런 정치적 뒷공작도 했다고 한다. 결국 전임 조폐국장이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자 후임 조폐국장에 임명되었다. 다만 조폐국장으로서의 업적은 후세에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당시 영국은 금과 은을 모두 본위금속으로 사용하는 이중본위제였다. 이 경우 금과 은의 법정 교환비가 실제 시장에서의 교환비와 다르면,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된 금속만이 유통되게 된다. 당시 영국은 실제 시세보다 법적으로 [[금]]을 고평가하고 있었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금화가 은화를 구축하여]] 이후 [[영국]]의 화폐 제도가 한참 동안 꼬여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당연히 뉴턴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환비율 조정을 시도했지만, 이는 금화를 소유하고 있던 자산가들의 자산 가치를 줄여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반발을 사 실행되지 못하였다. 결국 뉴턴은 위조화폐 방지 업무에만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영국에서는 금화만이 유통되게 되었고, 법적으로 저평가된 은화는 외국에서 금화로 바꿔오게 된다. 문제는 금이 그 가치가 너무 컸기 때문에 소액화폐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폐 활성화로 해결하기 전까지는 영국 경제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다만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힘든 것이, 역설적으로 지폐 도입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왔고 지폐를 사용하면서 신용화폐로의 발전이 더욱 촉진되었다. 또한 뉴턴 시기에 금을 고평가하여 사실상 금은 이중본위제를 포기하고 [[금본위제]]를 채택하였는데, 이중본위제 자체가 유지/관리하기 너무 어려운 체제이다 보니 단일 본위제를 채택한 것이 결국 금융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게 된다. 또한 [[은본위제]]를 채택하여 국제 시세보다 은을 고평가하고 있던 [[중국]]과의 국제무역이 촉진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어차피 영국 국내에서는 은이 저평가되는데, 중국에서는 오히려 국제 시세보다 은이 고평가되다 보니, 중국과의 무역이 수지타산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이는 [[아편전쟁]] 시기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중국이 엄청난 규모의 무역을 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시대가 지나 영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무렵이 되면 영국 중심의 금본위제가 세계 금융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다. 뉴턴의 조폐국 감사와 국장 시절을 다룬 책인 <뉴턴과 화폐위조범: 천재 과학자, 세기의 대범죄를 뒤쫓다(Newton and the Counterfeiter: The Unknown Detective Career of the World's Greatest Scientist)>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토머스 레벤슨 저, 박유진 역) [[http://www.yes24.com/Product/Goods/19185021|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